짧지만 그간의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는 참으로 넘어지는 것을 무서워 했다. 넘어지지 않으려 많은 애를 써왔고, 그만큼 길을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결국 넘어지게 되었고, 넘어졌다는 사실에, 다가오는 고통에, 쉽게 낫지 않는 지난함에 참 많이 힘들어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픔을 겪고 일어선 순간, 나는 이전보다는 조금 더 자라 있었다. 그래서일까, 넘어지면 아프지만, 넘어지는 것 자체는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비유적인 '넘어짐'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상처가 나보니 이건 너무,너무 아픈 것이었다. ㅠㅠ 며칠간 열심히 연고를 바르고 나니 이제 딱지가 앉았다. 그나마 여름의 끝무렵이라 다행이다. 한창 여름의 가려움은 아마도 더 견디기 힘들었을 테니.
다만 이번에도 넘어지면서 크게 깨달은 바는 있다. 좋은 몸 상태였다면 아마 더 기민하게 대처했을 수 있을 것이다. 구덩이에 발을 딛는 순간 탓! 하고 도약하며 다른 발로 땅에 착지-. 내지는 전방 낙법을 구사하며 왼쪽 정강이의 상처로 상처를 최소화할 수도 있었을(뭐래) 것이다. 하지만 무거워진 내 몸은 둔탁하게 반응했고 그 결과 상처가 여럿. 결론은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것. 이 결심을 하기에 다소 과한 상처일 수 있겠으나, 아픈 만큼 결의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도.
2. 안 열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국제 평화 마라톤 대회가 접수신청을 시작했다. 10월 3일 오전 8시 출발. 사실 10월 10일 대회도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는 몸 상태를 회복할 수 없다. 이 승부를 미룰 수는 없다. 10km 신청. 10km로 감각을 회복하고, 그 다음 주에 하프 완주가 목표이다. 기록은 상관 없다. 9월에 어떻게 훈련할 틈을 마련할 것이느냐가 변수이다. 아마도 런닝 머신에 의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관건은 얼마나 덜 게으르냐가 될 것이다.
3. 의도했던 것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하늘 보며 한숨을 내쉬면서도 엷은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그런 일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제법 중요하다고 여기는 순간들에 벌어지기 때문이다.
4. 지난 컨퍼런스의 영상이 나왔다. 워크샵을 보조한 프렌토 친구의 많은 배려가 느껴진다. 3분 40초 즈음 부터는 본격 병풍모드를 감상할 수 있다.ㅎ
5. 해결하지 못한 세 가지의 일들 때문에 나는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지 못하고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마냥 떠안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 세 가지의 일들도 한참 시간이 지난 것이 되어 하긴 해야 하지만 제때 마쳤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많이 잃게 되었다. 이런 지난함을 지나오면서 나는 때로는 새롭게 샘솟는 의지에 희망을 갖기도 하다가 너무 늦었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오르내림을 반복해 왔다. 그러는 사이 세 가지 였던 일은 때로는 한 가지로, 때로는 삼 백가지로 보이기도 하면서 결국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다. 이렇게 문장으로 남김으로써 나는 이 세 가지 일을 마무리 하겠다는 의지를 가져 본다. 어느 것도 하지 못하느라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 나는 그 와중에도 어떠한 것들을 남겨 왔다.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의 가치를 나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나는 이 일들을 기필코 마무리 짓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6. 내가 좋아하는 윤영이의 깊은 마음씨는 사실 16년 전에도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익숙한 윤영이 마음의 그윽함을 만날 때마다 나는 편안함이 아닌 설레임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