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 해의 첫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를 들고 18동 옆 벤치에 앉아서 노트북을 펴자 대륙의 찬바람에 맞먹는 바람이 불어왔다. 역시 서울대는 지대도 높고 땅도 넓어서 바람이 칼같이 차다. 얼마 앉아 있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PPT 작업을 마무리 해야 했다. 그동안 이방인으로서 이곳에 몇 차례 머물렀지만 대개 그 시간이 무척 짧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 방문이었던 2006년에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왜 통일을 사회학에서 다뤄야 하느냐 라는 질문에 "통일은 정치적인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사회와 사회, 그리고 문화와 문화의 만남이기 때문에 사회학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라는 질문에 "과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회학은 현재의 사실들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몇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특히 날선 질문을 하던 면접관은 "그럼 통일하면 들어와라"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년 전의 내 생각은 '엘빈 토플러를 사회학자로 보기는 곤란하구나' 라고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날 그곳을 찾은 나는 Speaker 였다. invite된. 어설픈 영어였지만 발표는 성공적이었고, STS라는 분야가 내 관심분야와 맞닿는 부분이 꽤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앞으로의 행사에도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년 걸렸다. 또 다시 2년 뒤, 이건 특별히 기약하지 않기로 한다. 한 번 주고 한 번 받았으니 이제 전혀 새로운 방향성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2. "Good afternoon, I'm Kang Ji Woong from Yonsei Univ. Honestly, I'm so nervous now, because this is my first presentation in English. I think I'm good at Korean...;;" 저렴한 표현의 영어로 첫 인사를 꺼냈고 생각지 않은 지점에서 사람들이 웃어주었다. 오타와 문법 오류 투성이인 스크립트와 어설픈 애드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던 발표는 사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순간순간 바라본 사람들의 표정에 담겨 있는 '이해하고 있는 표정'에서 뜻이 통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모국어가 아니면서, 비 일상적인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런 것이 외국어를 하는 즐거움인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동시에 반드시 외국에 머무르지 않더라도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것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3. 책을 보내드릴 분들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막연히 생각할 때에도 적지 않을 줄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적어보니까 역시 많다. 이렇게나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구나, 싶다. 지난 일요일에는 대학로에서 이 분들께 드릴 카드를 샀다. 책 표지에 고마운 분들의 성함을 적고, 카드에는 하나하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정성껏 적으면서 강군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드리려 한다. 그리고나서, 이제는 지켜봐달라고 감히 말씀 드리려고 한다.
4.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여야 하는 것처럼, 씨앗을 심기 위해서는 밭을 일구어야 한다. 경험과 기억은 유화와 같다. 깨끗하게 덧씌워질 수 있을지언정, 이미 그려진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흐르는 이 시간들은 겉흙과 속흙이 섞여 씨를 뿌리기에 알맞게 되는 밭을 일구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소중한 씨앗을 심기 위한. 새싹이 피는 봄과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 그리고 무르익는 가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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